안녕하세요. 오늘은 동남아시아 중 라오스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라오스는 동남아시아 한국판에 위치했으며, 산과 물이 풍부한 나라인데요.과거에는 동남아시아를 호령한 강국이었지만 20세기에 긴 내전으로 고통 받았고 지금은 가난한 나라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국가입니다.
불교 왕국 라오스의 역사: 건국부터 전성기까지
1. 라오스의 역사
1) 라오족의 건국
라오족의 나라 라오스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라오스는 타이족의 한 일파인 라오족의 나라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인 고대 타이족은 기원전부터 부터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근처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들은 서서히 남하하여 현 중국의 쓰촨성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 고대 타이족은 주나라에서부터 한나라까지 여러 중국사에도 이름이 보이는데요. 이들은 중국 왕조에게 밀려 다시 운남성 까지 이동했다가 서기 8세기 이후에는 서서히 동남아시아로 밀려 들어오게 되었죠. 그래서 지금의 메콩강 북부 라오 지방에 자리를 잡은 타이족의 한 일파가 바로 이 라오족인 것입니다.
2) 통일왕국부터 식민지가 되기까지
이렇게 8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동남아시아에 들어온 타이족들은 이후 동남아 역사의 주류 민족이 되는데요. 이 타이족들은 많은 나라들을 세웠습니다. 14세기 이후에는 태국에서 수코타이 란나 왕국 등을 세웠고 또 동쪽 라오스에는 란쌍 등의 나라들을 세웠는데 이때부터 타이족 계열의 국가들이 동남아시아 역사의 주인공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이렇게 메콩강 상류에 자리잡은 라오족은 이곳에 원주민이었던 소수민족들과 공전하면서 도시국가들인 여러 무앙을 세웠는데 통일 왕국이 들어서는 13세기까지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였습니다. 이 무앙들 중 유력한 곳은 메콩강 유역의 루앙프라방과 그리고 참파삭이 있었는데, 이들은 크메르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라오족의 역사는 이 세 곳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역사에서 라오족의 국가들은 짧은 전성기를 보낸 후 이웃 강국이었던 태국과 베트남의 속국이 되는 등 약소국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는 이들이 자리잡은 지역인 라오 지방이 산지가 많고 농지가 적어서 생산력이 낮은 지역이었고 내륙이라서 바다를 통한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짜오프라야강 유역과 홍강삼각주처럼 농업 생산량이 풍부한 지역에서 나타난 강대국들인 태국이나 베트남의 왕조들과는 조건이 달랐던 거죠. 당시는 토지의 생산력이 곧 인구 부양력으로 이어졌고 그 인구는 곧 군사력이었기에 군사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던 라오스의 운명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라오스의 종교와 란쌍왕국
1) 란쌍왕국과 불교 국가
또 현재 라오스는 독실한 불교 국가인데요. 14세기 이후 강력한 중앙 통일왕조가 들어서자 권력의 후원으로 불교가 그들의 주요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 불교를 밀어준 왕조가 바로 수많은 무앙들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란쌍왕국입니다.
이 란쌍이 성립한 시기는 14세기 중반으로 란쌍을 세운 파응움은 당시 동남아시아 최강국이었던 크메르 제국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라오족의 왕족이었 아버지와 크메르족 공주 사이에서 태어났고 청년이 되자 크메르 왕의 명령으로 라오 지방 무앙들의 반란을 진압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크메르 왕으로부터 많은 군사를 얻어 반란을 진압하고 루앙프라방에 입성하게 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라오족의 핏줄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라오족의 피가 그에게 크메르로부터 독립하게 만들었는데, 1353년 파응움은 당시 쇠락하던 크메르에 반기를 들고 루앙프라방에서 란쌍왕국을 세우고 라오족의 독립을 이루어냈습니다.
이 란쌍의 건국으로 라오 지방에는 불교가 퍼지기 시작하는데요. 그것은 파응움의 어머니가 불교 국가 출신인 크메르인 이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2) 란쌍왕국의 전성기
이런 란쌍왕국은 이후 350년간 이어지면서 라오족은 최전성기를 보내게 되는데 이때부터 라오족은 불교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라를 세운 파응움은 1374년까지 란쌍을 지배했는데, 이 시기 란쌍의 영토는 남쪽으로는 크메르를 물리치고 코랏고원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강력한 코끼리 부대는 란쌍 군사력의 핵심이었는데 크메르와의 전쟁에서 라오족은 매우 용맹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파응움 시대 말기에 이르면 그의 권력 기반이었던 크메르족과 라오족의 연합이 깨지면서 파응움은 왕위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뒤이어 왕위에 오른 이는 그의 아들인 삼센타이였는데요. 이때부터 1560년까지가 역사상 라오족이 가장 번영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라오스 역사상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전성기였기 때문인지 이 시기 이웃국가인 태국 베트남 왕조와의 충돌이 매우 많았습니다.
특히 1479년 당시 베트남에는 영토 욕심이 많은 레왕조의 타인똥이 황제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영토 확장을 위해 란쌍을 수시로 공격했는데 한때는 루앙프라방을 함락시키는 등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전쟁의 결과로 오랜 란쌍의 영토였던 쩐닌 지역이 베트남의 영향권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 쩐닌에서 오랫동안 영토분쟁이 벌어졌는데 이곳은 교통요지로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란쌍은 16세기동안 전성기를 구가하였으며 불교 발전에 힘썼습니다.
특히 1520년에 왕이 된 포티사랏은 자신의 아들인 세타티랏을 이웃 타이계 국가인 란나의 왕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란나와 란쌍은 잠시 하나의 나라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때 동남아 불교 세계에서 유명한 보물인 에메랄드 불상이 란나의 치앙마이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옮겨오기도 했는데요. 이는 란쌍이 불교의 독실한 후원자였음을 증명하는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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